💌, 눈 뜨면 사라질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2023. 11. 3.

이 메일이 잘 안 보이신다면 눌러 주세요!

디어 ,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려요. 보풀입니다.

낭만편지는 일주일 동안의 낭만의 순간들을 한데 모아 부쳐 드립니다.

낭만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고, 내가 직접 찾아갈 수도 있고, 그 어디에나 있을 수도 있고, 그 어디에도 없을 수도 있기에.

제가 경험한 낭만을 고이 적어 에게 선물합니다. 이 편지 한 통이 의 금요일 아침에 낭만으로 가닿기를 바라며!🍀

# 퇴사와 시월과 다 쓴 치약

퇴사도 낭만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시월에 퇴사를 했어요! 마지막 출근 날을 앞두고 서랍을 정리하던 중, 새삼 치약 한 통을 거의 다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아마 7개월이라는 재직 기간 동안 150여 번의 점심 식사와 양치를 했을 거예요. 한 공간에 어느 정도 머물다 보면 어떻게든 티가 나나 봅니다.

속이 꽉 차 있던 치약 한 통이 홀쭉해지기까지! 많은 사람과 일을 만났고 봄을 거쳐 여름, 가을을 지나왔어요. 그게 어찌 됐든 간에 그 끝의 시점이 시월이라는 사실은 아주 기뻤답니다.

시월. 유독 부드러운 발음의 하늘 높고 날 좋은 달이니까요. 시월의 퇴사라면 다른 달의 퇴사보다는 조금 낭만적으로 봐도 괜찮겠죠?

# 계절 알림장, 가을옷 입은 광화문 글판

삼천 번을 심고

추수한 후의 가을 들을 보라

이런 넉넉한 종이가 있나

,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가고 있음을 무엇을 통해 눈치챘나요? 집을 나선 순간 피부로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 길거리 위 사람들의 점점 두꺼워지는 외투? 혹은 걷다 보면 코를 찌르는 호떡, 붕어빵, 땅콩과자 같은 가을 주전부리들의 냄새?🍂

가을이 왔음을 친절히 알려 주는 것들 중엔 좋은 것들이 참 많이 있지만, 교보생명 사옥에 걸리는 광화문 글판을 빼먹으면 왠지 섭섭하지요. 계절의 어귀마다 계절과 어울리는 한 문장을 크게 내걸어 사람들에게 힘과 격려를 건네주는 광화문 글판. 저는 광화문 광장 부근을 걷다가, 버스를 타고 강남 교보타워를 지나가다가 글판 속 짧은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도심 속의 작은 낭만'을 느낍니다.

광화문 글판 2023 가을 편은 신달자 시인의 시 <가을 들>의 일부입니다. 추수가 끝나 텅 빈 가을 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여백이기도 하지만, 또 다음 가을걷이 전까지 무수한 시도와 도전이 허락되는 넉넉한 여백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추수 후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농부의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될 것만 같아요. 남은 2023년을 조금이나마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신달자 시인의 <가을 들>은 11월 말까지 게시된다고 해요. , 겨울이 오기 전에 광화문 광장에 잠시 들러 이 아름다운 27글자를 두 눈에 직접 담아 보는 건 어때요? 이순신 동상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외국인들, 솟구치는 분수 아래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며 뛰노는 아이들, 바삐 걸어가면서도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한 번 쳐다보고 지나가는 어른들의 그림 같은 풍경은 덤입니다.

# 허름한 간판 뒤 따뜻한 스파게티 풍경

광화문 근처에 방문했다면 파스타 전문점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기시길! 간판은 허름하고 지극히 평범한 글씨체는 왠지 모르게 촌스러워 모든 것이 의심스럽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밖에서 바라본 인상과 달리 음식점 안은 나무 테이블, 노란 조명, 세월이 느껴지는 유명 인사들의 싸인 등으로 인해 따뜻한 느낌입니다. 반전 매력을 가진 이곳은 신라호텔 주방장 출신의 박충준 셰프님이 운영하는 아주 오래된 맛집이라고 해요. 화려한 외관보다는 진정한 맛에 집중하고자 하는 셰프님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입니다.

추신. 저의 최애 메뉴는 '모짜렐라 토마토소스 감자뇨끼'예요. 크림소스 베이스의 감자뇨끼가 더 익숙한 저에게 도전과도 같은 메뉴였는데, 쫄깃한 식감과 짭조름한 소스 맛에 반해 단숨에 1위 메뉴가 되었답니다. 토마토소스와 뇨끼를 좋아한다면 이 메뉴에 도전해 보세요!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103-1 2층

11:30 - 22:00 (브레이크 타임 15:00 - 17:00 / 라스트 오더 21:00)

매월 2, 4번째 일요일 정기 휴무

# 형형색색의 영감들

에게 서점은 어떤 공간인가요? 저는 '서점' 하면 알록달록한 책 표지들과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책 제목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특히 시 코너에 가면 이해될 듯 말 듯한 제목과 시인의 말을 가진 여러 시집들이 모여 있는데, 그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퍽 재미있습니다.

시월의 끄트머리에 교보문고에 방문했을 적에는 하얀 배경 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라는 제목의 시집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어요. 두부가 구워지는 따뜻한 소리, 겨울의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떠올라, 이 제목은 올겨울이 오는 동안 문득문득 생각날 듯합니다.

추신.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글판과 분수 풍경 바라보며 가을이 왔음을 느끼기 →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에서 근사한 식사하기 →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러 책 표지 구경하고 책 냄새 맡기. 이상 제가 추천해 드리는 광화문 낭만 코스입니다.

#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 고선경 시인의 시 <샤워젤과 소다수> 속 한 구절입니다.

저는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를 구매해 읽었습니다. 이 시집은 시 코너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잠깐 후루룩 맛봤을 때 제가 좋아하는 단어나 구체적인 장면 묘사의 구절들이 많아 마음에 들었답니다. (물론 표지와 제목의 예쁜 색감도 선택에 한몫했어요🤭) 그리고 역시나, 집 소파에 각 잡고 앉아 제대로 맛봤을 때도 제 취향을 저격하는 좋은 시들이 많아 꽤 여러 페이지를 접어 두었어요.

접어 둔 여러 모서리 중 한 모서리를 소개합니다. 제목은 <진짜로 끝나버렸어 여름!>. 필사하는 마음으로 시의 전문을 키보드로나마 옮겨 적어 볼게요.

진짜로 끝나버렸어 여름!

잘됐지 뭐야

부러웠거든 너의 여름 원피스

흰색 바탕에 연두색 클로버 무늬

자주 가는 천변 카페에서는

사과잼 바른 와플을 팔기 시작했어

산울림보다는 유재하나

김광석이 떠오르는 계절

절반만 빛바랜 이파리

물웅덩이에 둥둥

컨버스는 역시 로우보다 하이

밟으면

이파리가 구겨지고 구름이 조각난다

카페 차양이 걷힐 때쯤

너는 어느새 한참을 앞서 걷고 있어

석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오프닝에 어울릴까 엔딩에 어울릴까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남자애들이 농구를 한다

골대의 그물망이 곧 찢어질 것 같다

텅 빈 쭈쭈바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손과

너의 캄캄한 뒤통수

농구공이 쉴새없이

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끼어드는

"다 울었어?"

너와 내가 점점 나란해진다

# 주파수를 104.1mhz에 맞추고

시월 말에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자유로 자동차극장에서 보고 왔어요!🚗 주말 관람료는 차 한 대당 25,000원. (평일에는 22,000원이라고 해요.) 요금의 기준이 차량 수이다 보니 서너 명이 함께 영화를 볼 계획이라면 가성비도 챙길 겸, 드라이브 겸 자유로까지 달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극장 내에 팝콘, 과자, 컵라면 등을 파는 스낵바가 있어 그곳에서 간식거리를 사도 좋고, 따로 먹고 싶은 메뉴를 외부에서 미리 사 오는 것도 좋아요. 확실한 건 나의 팝콘 씹는 소리 혹은 뒤적거리는 소리가 혹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 영화를 보며 느끼는 순간의 감정, 탄성 같은 것들을 동승자에게 육성으로 내뱉을 수 있다는 점도 꽤 좋습니다.

차창 너머로 영화의 장면을, 주파수 104.1mhz로 영화의 음향을 느껴 보고 싶다면 자동차극장에 방문해 보세요. 주말에는 상영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방문해야 앞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길!

📍자유로 자동차극장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낙하리 265-12

기리보이 [소설 쓰고 자빠졌네] 중 '배고파' 가사 일부

기리보이 [소설 쓰고 자빠졌네] 중 '산책' 가사 일부

# 소설가 기리보이의 메뉴판 그리고 반려일기

10월 26일, 기리보이의 정규 10집 앨범 [소설 쓰고 자빠졌네]가 발매되었습니다🎧 정규 앨범은 2년 만에 발매되어 유독 이번 앨범은 팬들과 리스너들에게 아주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었는데요. 11개의 트랙을 순서대로 차분히 듣다 보면 왜 앨범 제목이 [소설 쓰고 자빠졌네]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피처링 하나 없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에 소설 같은 서사를 담아낸 기리보이. 특히 더블 타이틀곡 중 한 곡인 '단기 알바'를 들으며 가사를 곱씹다 보면, 다가오는 애인의 생일을 잘 챙겨 주기 위해 취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4번 트랙 '배고파'

'배고파'는 이제 라면도, 짜장면도 아닌 네가 당긴다는 내용의 곡으로, 떠나간 너에 대한 그리움을 재치 있게 풀어냈습니다. 2절 가사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이 나열되어 있는데, 메뉴판으로 써도 될 정도로 다양한 메뉴들이 나와요. 오늘의 메뉴가 고민된다면 4번 트랙 '배고파'를 감상해 보세요! '조개탕'과 '토레타'의 라임도 참 재미있습니다.

🎵6번 트랙 '산책'

'산책'은 게으르고 우울한 내가 네 덕분에 이렇게라도 외출해 산책을 하고 행복해진다는 내용의 곡입니다. '기운을 차리고 너의 간식을 고르고', '물을 다 마셨구나 정수기에 물을 떠', '너가 혀를 내밀고 또 웃으면'과 같은 가사를 통해 반려견에게 바치는 노래임을 알 수 있어요. (물론 리스너에 따라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 주는 고마운 존재를 떠올리며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기리보이는 자신의 반려견 '돌돌'에게 이런 말,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너가 가는 방향 그대로 따라가는 내 생활패턴'. 반려견에게 이끌려 산책 당하는 사람들의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뭉클하기도 합니다.

출처 WOODZ 공식 유튜브 [WOODZ you like [Christmas🎅🏻?] Ep.1 - 승연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 굳이? 굳이! 낭만 앞에서 귀찮음쯤이야

, 가수 우즈가 만든 '굳이데이'를 아시나요? '굳이데이'란 조개구이가 먹고 싶다면 굳이, 기꺼이 인천까지 가는 그런 날입니다. 친구들과 과거의 재미있었던 일을 곱씹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일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날을 만들었다고 해요. '굳이'스러운 일을 점점 하지 않게 되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굳이 집에서 도시락 싸 먹은 날

에게 '굳이데이'를 소개하며 몸소 실천해 보이기 위해, 회사를 다닐 적에도 잘 싸 가지 않던 도시락을 굳이 집에서 정성스럽게 싸 먹어 보았어요. 사실 저를 위한 한 끼를 접시가 아닌 도시락 통에 담는 것뿐인 작은 차이였는데도 왠지 소풍 나온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답니다. 도시락 메뉴는 메밀김밥🍱